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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e/stay night] 에미야 시로, 빌려온 이상(理想)

반가워1 2021. 1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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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te/stay night] 에미야 시로

빌려온 이상(理想)

 

 토오사카 린에 이어서 남주인공인 에미야 시로입니다. 그는 정의의 사자가 꿈인 소년입니다. 막연히 소년 만화의 주인공들은 정의의 사자를 꿈꾸고 이야기 속에서 활약해갑니다. 그러나 시로를 보면 왜 정의의 사자를 꿈꿨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떤 점에서 비틀린 이상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작가가 소년만화의 클리셰를 잘 비틀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는 시로를 통해 시청자에게 반문합니다. 왜 소년만화의 주인공들은 정의로워졌을까? 그 정의가 옳은 것인가?

 

 조금 그러한 철학적 문제는 미뤄두고 무엇보다 제가 왜 이 인물을 그토록 좋아했는지 생각했습니다. 여캐릭터들도 상당히 매력적이었지만 저는 남자주인공인 시로가 정말 멋있었습니다.

 

 어제 '광고천재 이제석' 책을 읽었습니다. 그 중에 이러한 맥락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진정한 광고를 하고 싶다. 나이키를 신으라던가, 오레오를 먹으라던가, 날씬한 몸매와 예쁜 얼굴이 당신을 구원해줄 것이라던가, 그런 광고는 진정으로 하고 싶은 광고가 아니었다.'였습니다.(정확한 인용이 아닌, 기억에 의존한 문장입니다.) 이때 언급된 '구원'이란 단어가 왜 시로를 좋아하게 되었는지 잘 설명할 수 있는 단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시로는 제게 있어서 구원이었습니다.

 

 저는 많은 돈, 사람을 부릴 수 있는 권력, 호감을 얻을 수 있는 멋있는 외모, 몸매, 말투와 매너. 그러한 외부의 것은 진정한 행복을 좌우할 수 없다고 배워왔기 때문이지요. 남을 위해 사는 것. 특히 불행한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 구하는 것, 그러한 의로움에서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배웠습니다. 나를 구원해줄 것은 부와 명예, 외모가 아니라고 알았습니다. 무엇이라 당시에는 말할 수 없지만 이제 말을 붙여보자면, 그것은 '의義'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의가 곧 저를 구원해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의가 없는 교실에서 나름의 최선의 의를 행했지요. 힘은 없었지만.

 

 애니메이션으로 돌아와, 문제는 그 의를 어떻게 실천해가는 것입니다. FATE의 프리퀄인 ZERO에서 감독은 키리츠쿠와 키레이의 싸움을 베트맨과 조커의 싸움을 오마쥬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정의와 부정의의 싸움. 구하려는 자와 죽이려는 자의 극명한 대비이지요. 여기서 구하려는 자가 존재하려면 죽이려는 자가 존재해야 한다는 전제가 생깁니다. 즉, 영웅이 생기려면 빌런이 존재해야한다는 사실입니다. 義를 不義가 증명해주는 셈이지요.

 

 마찬가지로 시로는 극중 악역으로부터 '자네의 꿈은 곧 이루어질 것이라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듣고 즐거워하지 않습니다. 시로의 꿈은 정의의 사자였고, 정의의 사자의 등장에는 필연적으로 악한 자의 등장이 전제되어 있습니다. 이 모순에 괴로워합니다. 결국에는 미래의 나 자신이 '그것은 빌려온 이상에 불과하다'고 폄하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시로는 그 꿈이 옳은 것이라고 당당히 말합니다. 설령 그것이 빌려왔다고 해도, 의를 쫓는 것이 결코 틀린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합니다.

 

 저는 스스로 생각한 것은 없다고 믿습니다. 내가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은 모두 그 누군가에게 배운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지요. 이렇게 생각하는 생각또한 배워서 가능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생각은 빌려온 것입니다. 빌려온 것을 갖고 블록놀이를 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그누구도 해내지 못한 모양을 만들어내면 그것이 위대한 사상이나 창작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려왔다고 비난받는 것 자체가 특별히 문제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절'과 같이 '남의 생각을 갖고와서 앵무새처럼 말하기만 하지, 그것에 대해 내가 깊게 생각을 하지 않았다.'라는 이유때문에 비난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혹은 그러한 것을 명분으로 내세워 뒤로는 이익을 취하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생각때문이기도 하겠지요.

 

 하지만 시로는 깊게 생각을 안한 것도, 사기꾼도 아닙니다. 진실로 믿고 어떻게 하면 이룰 수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합니다. 저는 시로의 이런 면이 너무나도 좋았습니다.

 

 남자주인공인 시로는 매일 체력단련과 마술단련을 성실하게 합니다. 동시에 아르바이트도 하고 학교에도 성실히 출석하며 요리, 세탁, 청소 등등 집안일도 해냅니다. 비록 애니메이션에서 등장한 다른 초인들에 비해 많이 부족하지만 저는 시로의 이런 면만으로도 완벽에 가까운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주인공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결정적인 부분은 이상을 향해 추진하는 부분에서 무언가 중요한 것이 결여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여주인공인 린이 등장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완벽하면 도와주는 이가 필요없으니 말이지요.

 

 여러모로 무거운 생각의 짐을 함께 나눈 전우같은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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