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일상 에세이

지금 이 시간 당직을 서시는 모든 분께

반가워1 2022. 4. 4. 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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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오지 않는 야심한 새벽에 문득 생각이 나서 글을 씁니다.

유독 당직날 아침이면 신비로운 감정을 겪게 됩니다. 당직 아침, 현관문을 나설 때, '오늘이 아니라 내일 아침에서야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는 정리 안된 포근한 방과 작별의 인사를 나눴습니다. 그 애틋함은 뭐랄까요. 다시 돌아올 수 없을 것만같은 느낌입니다. '내일 아침 내가 여기에 과연 무사히 올 까?'. '아니, 내일 아침은 올까?'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던 걸 보면 애틋함과 절망이 뒤섞였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당직을 여러번 거치며, 조금 특별한 당직을 생각해봅니다.

2018년, 2019년 군생활을 할 당시, 2년 모두 어쩌다보니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당직을 섰습니다. 첫번째 이브날은 어쩌다보니 당직이었고 두번째 이브날은 갓 결혼한 간부 대신 자청해서 당직을 바꿨던 기억이 있습니다. 워낙 좋고 선한 분이라 기꺼이 근무를 바꿨습니다.

기독교는 아니지만 크리스마스만의 들뜬 연말분위기는 묘한 환상에 젖게 합니다. 그러나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쌓인 부대는 다른 세계입니다.  말 그대로 바깥과는 벽을 하나로 나뉘어 있는데다 야심한 어둠이 덮쳐버리면 지금이 언제인지 시간도 잊게 해주지요.

지금 생각해보니 어쩌면 미래를 감히 그릴 수 없게 만드는 심리적 막막함이, 앞서 말한 공간적 시간적 어둠보다 더 깊고 어둡게 저의 눈을 가렸던 것이 아닌가합니다. 현실의 괴로움을 받아냈다간 영영 쓰러져 일어서지 못할 것같아서, 애써 모든 걸 잊으려 했던 덕분이지요. 예민한 감각을 둔하게 하고 그저 순간을 버텼던 때. 그 지독한 어둠 속에서 현실이 흐릿해진 상태에서 웽웽되는 상황실 소리, 먼지냄새, 밝은 조명. 위장을 바닥까지 끌어내리는듯한 감각. 아직까지 생생하게 느낄 수 있습니다.

신기한 것은 아침이 밝아오면 정신도 차츰  밝아지고 몸에 활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신체리듬에 따라 신경계가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리고는  어제 근심에 차서 나갔던 집으로 돌아옵니다. 얼마나 반갑고 포근하던지요. 돌아오면 씻고 쓰러질 듯 이부자리에 눕습니다.

군대 이야기를 하니 부끄럽고 잘못된 선택을 했던 트라우마가 생생히 되살아 납니다. 누군가를 정서적 신체적인 피해를 준 것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인식하지 못했지만 되돌아보면 스스로와 타협하고 후배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인 것들말입니다.

당직. 이제는 당직이 없는 직업을 갖고 편히 생활하고 있는데 잠을 이루지 못하네요. 5년전 제가 봤다면 정말 배부른 고민일텐데요. 당시에는 밤만 안새는 직업이면 좋겠다. 하고 간절히 바랐습니다. 이제 그 고민이 사라지니 새로운 고민이 생겼네요. 밤에 잠이 안온다는 고민 말입니다...

저 마다의 고민을 안고 사는 것 같습니다.

끝으로, 당직을 서는 여러분, 파이팅입니다. 조금 졸아도 좋으니, 부디 아침이 온다는 것을 잊지 마셨으면 합니다.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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